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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성공시대 114회 미주리주 최초 한인 판사 평화 주디 드레이퍼

4. 비즈니스 경제/TV 상자

by 마이클잭슨형 2013. 10. 2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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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딛고 선 한인 판사 평화 주디 드레이퍼

미주리주 최초 아시아계 여성 판사인 "평화"라는 이름을 가진 주디 드레이퍼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세인트루이스시 검사와 워싱턴대학교 법학과 조교수, 미주리주 교정국 첫 여성 국장 등을 거쳐
현재 아시아계 최초 미주리주 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입니다

 

 

LA 한인축제에 세인트루이스 판사이자 한국 명예영사로 소개됩니다
2011년 명예영사로 임명되었는데 사촌이 남대문에서 한복을 맞춰져 입었네요


세인트루이스는 미시시피 강을 중심으로 교통이 발달한 미주리주 최대 경제도시인데
며칠 전 MLB의 LA 다저스를 이긴 명문 팀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재판이 열리는 날에는 하루 50여건 이상을 처리하는데요
피고인의 나이가 젊으면 더욱더 대화를 하며 신중해 집니다

 

 

법정에서 판결만 이뤄지는게 아니라
성대한 결혼식 대신 소박한 결혼식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방되기도 하는데 의외죠?

 

 

피부색이 다르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결혼식을 할 수 있습니다
 

 

집에 있는 것 중 특이한게 "자게 농"이 있습니다
30여년 전에 어머님이 결혼 때 선물해준 것이라는데요
지금은 한국에서도 일반 가정집은 보기 힘든 가구죠

6살에 한국을 떠났군요
자게 농에 자게 도자기까지.
도자기는 한국인이었던 그녀의 의뢰인이 만들어 준 것이구요

 

남편 조지 드레이퍼는 미주리주 대법원 판사로 일하고 있구요
로스쿨에서 동기로 만났군요
25살 딸 첼시는 변호사 자격증이 있지만 연기자를 꿈꾼다는데 언제 볼 날이 있겠죠?

 

텍사스 주 킬린에 어머님을 보러 딸과 함께 방문하는데
어머니와 주디, 첼시 세 사람이 참으로 닮았네요

 

한국 전쟁 직후인 1953년 한국에 주둔한 흑인 미국 병사와 결혼 후
미국에 이민갔는데 어렸을 때부터 인종차별을 많이 당했네요

 

미주리주에 여러 인종의 판사가 많은 이유는
"성과중심의 판사 선별 제도"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치력, 인맥이 아닌 능력에 의해 선발합니다.

 

한국전쟁 참전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했는데요
전쟁 후에 태어나서 그의 이름이 "평화"이기도 합니다

 

주디 드레이퍼는 한인들이 미국에서 더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계 2세, 혼혈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서 운영도 합니다
노숙자 쉼터를 방문해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함으로써 쉼터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구요

 

 

LA에서 열린 K-POP 축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는데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고진감래"
고난을 극복하면 달콤한 열매를 맺는다는 말을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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